나는 앞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얼마전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둘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은 다르지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공통적인 부분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주변 사람들을 이끄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나는, 내가 속한 또래 집단 내지 커뮤니티에서 내가 그들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까? 아니면 평범하게 리드 당하며 살아가게 될까?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내가 속한 집단들에서의 모습이 미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노력해서 발전해 나가는 부분이 있겠지만, 나만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남도 노력할테니…

지금 영향력 끼치는 리더가 되지 않으면 나중에도 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귀찮다며 inactive 하게 살아간다면, 나이 먹었을 때 더 하면 더 할 것이다. 지금 –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 능력이 부족하다면, 나중에도 그럴 것이다.

2009/10/20 at 7:19 오후 댓글 남기기

진로에 대해

지난 금요일, 철야 예배 후에 청년부 담당 목사님과 몇몇 청년들과 함께 산기도를 갔다. 가서 이런 저런 기도를 하다가 진로에 대해 기도를 하게 되었다. 졸업후에 취직을 할지, 대학원을 갈지, 대학원을 간다면 국내로 갈지, 해외로 갈지, 등의 선택의 문제들이 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한 찬양이 떠오르게 하셨다. 바로 강명식씨의 “이치”.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일을 하려고 무리하지 않을 때
이미 온전히 이루어져있는 이치

내가 무엇이 되려고 고집하지 않을 때
이미 아름답게 되어 있는 이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하나님하고 별로 안친하다가도 이런 걱정거리가 생기면 갑자기 막 달려가서 쫑알쫑알 질문을 내뱉는다. 그러면 하나님 입장에선 어떠실까? 분명히 이 녀석한테 그 모든 질문들의 답변을 알려주면 “쌩유~” 한 마디 던지며 그 일 하러 휭 도망갈텐데… 그치, 나도 아직 그런 사람이기에, 이런 식의 질문은 응답하지 않으심이 하나님 다우시고, 또 그게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위해서도 좋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 일에 굉장히 집중한 상태로 하나님 찾아가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들으면 그 답을 가지고 다시 그 일에 집중하며 하나님을 잠시 멀리하는 나의 태도. 안봐도 뻔하다.

그래서 다짐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연습에 더 충실히 하겠다고. 하나님 안에 거하며 나아간다면, 내가 바라보아야 할 길을 나도 모르게 바라보고 있고, 내가 꾸어야할 꿈을 나도 모르게 꾸고 있는 그런 “이치”가 내게도 적용될 것이다.

무언가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2009/10/13 at 9:45 오후 댓글 남기기

책] 권능 – 전병욱

전병욱 목사님의 “권능”을 선물 받았다. 전병욱 목사님의 설교 mp3 를 다운받아서 여러 차례 들었던 경험으로, 설교를 참 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말씀하시는 방법 자체가 매우 간결하고 힘이 있다. 내가 고치고자 하는 부분이 문장을 길게 쓰는 것인데, 목사님은 그렇지 않다. 아주 짧은 문장으로 끊어서 말씀을 하시니,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고 좋다.

이 책도 참 좋았다. 그런데, 그냥 설교 같은 느낌이다. 설교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향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면, 책은 특정 대상이 정해져 있으며 어떤 주제에 대해 그 독자층에 맞는 난이도를 가지고 서술하는 것인데, 전병욱 목사님의 책들은 그런 느낌이 안 든다. 그냥 설교를 장과 절로 잘 분류해서 기록한 느낌이다. 내용들은 물론 좋다. 형광 펜으로 칠하면서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많다. 깨닫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책 같은 느낌이 안 든다.

“깊은 통찰 가운데 진하게 우러나와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 쓴 책”이라는 느낌은 잘 안 드는 게 나의 개인적인 견해다. 전병욱 목사님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찍어”내시는 것 같은데, 그 정도 속도면 그런 책인 게 당연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진하게 우려낸 사골국 이라기보다, 박스에 20개씩 담아 파는 녹차 티백 같은 느낌이랄까? 가볍게 마시기 참 좋다. 입에도 좋고 몸에도 좋은 느낌이다. 그런데 잠깐이다. 기독 고전 서적들을 읽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종이 한 장이 그렇게 안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런데 그 가운데 커다란 해머로 머리를 내려 치는 듯한 충격과 깨달음들이 가끔 있다. 그것들은 내 삶과 가치관을 뒤흔든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은 이런 류의 책들 위주로만 읽는 것 같다. 나도 그랬지만,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깨닫게 된다. 고전이 왜 고전인 것인지. 왜 다들 고전을 읽으라고 하는지.

그렇다고 전병욱 목사님의 책들을 싸그리 잡아서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책들이다. 우리에게 유익하다. 하지만 그 유익의 모양과 종류는 다양하다. 전병욱 목사님의 책들이 줄 수 있는 유익이 있고, 다른 책들이 줄 수 있는 유익이 있다. 하지만 자기 입에 달게 여겨졌던 것만 계속 따라가다 보면 여러 면에서 불균형에 휩싸일 수 있다. 당장 입에 쓰더라도 책을 골고루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책 정보 *
지은이 : 전병욱
출판사 : 규장
ISBN(13) : 9788960971202

2009/10/08 at 2:44 오후 댓글 남기기

진실과 희망과 소통

미실 :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희망은 버거워 하구요. 소통은 귀찮아 하며,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백성은 즉물적이에요. 떼를 쓰는 아기와도 같죠.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중략) 처벌은 폭풍처럼 가혹하고 단호하게, 포상은 조금씩 천천히, 그것이 지배의 기본입니다. (후략)

덕만 : (중략) 제 말을 믿지 못했겠지요. 새주께서 통치하시는 동안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니까요. 그렇게 늘 공포로만 다르셔 오셨으니까요.
이제 알겠습니다. 그것이 진흥대제 이후로 신라가 발전이 없는 이유였습니다. 새주님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죠. 새주께서 나라의 주인이었다면, 백성을 자기 아기처럼 여겼을 테고, 그럼 늘 얘기하려 하고, 늘 이해시키려 하고, 늘 더 잘 되길 바랬겠죠. 허나, 주인이 아니시니까요. 남의 아들을 돌보는 것 같지 않았겠습니까? 늘 야단치고, 늘 통제하고, 늘 재우고 싶었겠죠. 주인이 아닌 사람이 어찌 나라를 위한 꿈을, 백성을 위한 꿈을 꾸겠습니까.

– 덕만 공주와 미실 새주(璽主)의 대화 中, 선덕여왕 39회분 –

2009/10/05 at 3:01 오후 댓글 남기기

승리의 조건

여호수아 23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을 담았다. 5절 중간부터 6절에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 23:5-6)

라고 써있다. 그 땅을 취할 것이기에 무기를 정비하라 말한게 아니라 말씀 위에 서라고 한다. 승리를 위해 실력을 닦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고 하나님의 종이 되야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는 것이다. 먼저 종이 되자…

2009/10/05 at 11:39 오전 댓글 남기기

악인의 형통함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렘 12:1 中)

우리는 때로 ‘왜 저렇게 악하게 살아가며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저 사람은 저리도 형통합니까’ 라며 하나님께 따지곤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우리가 부러워하고 억울해 하는 부분은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부인 것 같다. 되돌아보면 한 번도 ‘왜 저 악인은 늘 저렇게 기뻐하며 지내고, 저 악인의 가정은 행복해보입니까?’ 등의 이유를 가지고 하나님께 따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혹은 그런 하소연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영적인 부분을 놓치고 세상의 눈으로 세상적 가치를 우선시 하다보니 생기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악인들이 누리고 있는 그런 세상적 부는 부차적인 것이며, 그보다 더 우선시 해야 할 영적인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그들이 누리지 못하고 있고,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이런 영적인 풍요로움으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주께 찬송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09/10/01 at 7:10 오전 댓글 남기기

수단과 목적

가끔씩 우리는 목적을 헷갈린다.

늘 삶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써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리라 다짐한다. 그래서 잘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을 위해 잘하려고 노력한다.

조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조장이 실력이 많이 모자라서 많이 답답하고 과제 진행이 잘 되지 않았다. 화가 나도 조장이 미워졌다. 좋은 결과를 얻어야 되는데… 잘 하고 싶고 잘 해야 되는데…

그 순간 깨닫는 것은, 내 목적이 ‘잘 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더라는 것이다. ‘잘 하는 것’을 수단으로 삼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수단이 목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잊은 채, 그 목적에 매달리고 집착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게 나의 목적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어야 했다. ‘잘 하는 것’으로 기쁘시게 해드리려 했었지만, 그게 안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기쁘시게 해드리면 되는 것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 ‘주변 조원들을 격려하는 것’, ‘조장을 더욱 세워주는 것’ 등의 모습으로 기쁘시게 해드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하나님 기쁘시게 해드리는게 목적이 아니라 ‘잘하는 것’ 으로 목적이 바뀐 상황인지라, 그런 모든 것들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상황이 답답하고 힘든 것이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순간 마다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 일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지(부분적으로라도) 확인해봐야 한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린 잘못된 길로 가며 구렁텅이에 빠진다. 위험해진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이다.

2009/09/26 at 8:04 오전 댓글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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